Q. 현재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A. 저는 현재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88년도에 만들어 져서 29개 회원단체와 6개의 지부로 구성된 단체 입니다. 이곳에서는 여성단체들이 요구하는 양성평등에 관한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여론화 하고 법제도화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Q. 남윤인순 동문께서 여성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A. 여성운동을 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학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79년 학내 민주화 사건으로 강제 퇴학을 당하고 나서 제가 사는 지역의 야학활동을 통해 사회운동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렇게 지역에서 운동을 하며 결혼도 하고 생활도 해나가던 중에 인천지역에서 ‘일하는 여성 나눔의 집’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죠. 제가 여성으로 살아가며 일을 하다 보니까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권익을 대변해줄 단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보다 본격적으로는 제가 86년에 딸을 낳은 뒤로 일하는 여성들이 보육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끼게 되면서부터 였습니다. 지금은 어린이집이 많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린이집 만드는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계속 해오게 되었습니다.
Q. 여성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남성들이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A. 여성운동이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을 제거하는 운동이죠. 사실 우리사회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나 제도의 일차적인 피해자는 여성이지만 한편으론 남성들도 이차, 삼차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성다움이나 남성성에 대한 강요와 가부장적인 구조에서 남성이 가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은 그만큼의 억압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운동이 진정으로 지향하는 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일과 가정, 사회적 영역에서 공동으로 참여하고 함께 책임 질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여성운동은 여성을 위한 운동이라고 보기 보다는 인간해방 운동이라고 봐야 합니다.
Q. 여성운동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과 가장 힘든 점을 말씀 하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현재 여성단체연합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제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일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성과로 영유아 보육법을 제정 또는 개정하거나 성폭력특별법제정, 가정폭력방지법제정, 성매매방지법제정, 호주제폐지 등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이렇게 제도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제거하는 일들이 성과를 내면 그 효과는 여성들 개개인에게 직접 가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보람이고 시민들의 격려전화라도 한 통 받을 때면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 입니다.
이런 반면 또 어려운 점도 많이 있습니다. 여성문제라고 하면 공익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들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직접 참여하시기 보다는 “누군가 하겠지, 시간이 지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정작 참여하거나 함께 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활동하는 사람들의 환경이나 조건들이 상당히 열악하고 힘들게 꾸려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조건이나 상황들은 잘 모르시고 여성운동이 마치 대단한 엘리트 운동이라는 편견을 가진 분들이 많고, 직접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힘이 빠집니다. 그래서 그런 오해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Q. 여성운동연합을 필두로 여러 단체들의 노력을 통해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성들의 권익이 많이 신장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여성운동의 과제는 어떤 것 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A. 그 동안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제도적으로 워낙 압축적인 성장을 해 왔습니다. 그에 따르는 미흡함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구요. 이렇듯 여성문제도 법제도화의 속도는 어느 시점부터 상당히 빨리 진행되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여성들의 현실을 변화 시키는 데는 아직도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의식이나 관행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교육이나 미디어 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의 양성평등 교육의 강화나 각종 매체들의 성 상품화를 차단하는 차원의 여성운동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의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그 극단으로 몰려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성들의 빈곤이나 일자리, 비정규노동, 혼자 사는 여성들의 직업문제 등은 여성운동이 당면해 있는 중요한 과제들입니다.
Q. 함께 여성운동을 하고 계시는 동문들은 많이 계십니까?
A.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성운동을 직접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지만 환경부 차관을 지내신 박선숙 동문도 80년대에는 여성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여성단체연합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었습니다. 역사학과 80학번 조영숙 동문도 여성단체연합에서 오랫동안 같이 활동하며 사무총장도 지내고,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78학번 강경희 동문도 지금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분들 외에도 여성운동을 하면서 세종대 후배들이라고 이야기 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너무 한참 후배들이어서 다 기억은 못하겠지만 많은 동문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Q. 현재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이외에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설명 부탁 드립니다.
A. 현재 국내 시민단체들의 연대체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공동대표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각한 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업극복국민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하에서는 나름대로 정부와의 거버넌스 차원에서 여성정책에 많이 참여를 했었습니다. 특히나 저 출산 고령화 문제와 관련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민간 위원으로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비상임위원으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방송공사(KBS) 이사’로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Q. 77학번이시니까 여대로 입학을 하셔서 중간에 남녀공학으로 바뀌셨는데 갑자기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다 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그때의 상황을 조금만 이야기 해주십시오.
A. 정말 전혀 다른 분위기였죠. 제가 수도사대로 입학 할 때만 해도 한 학년에 600명 정도 입학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캠퍼스가 정말 예쁘고 낭만적이었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내다가 79년도에 남자 후배들이 들어 온 거죠. 그래서 사실 남자후배들이 굉장히 귀여웠죠. (하하하) 여성들끼리 낭만적인 분위기로 지내다가 갑자기 캠퍼스 안에 남자후배들이 생기니까 호기심도 생기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어요. 당시에 남자화장실도 제대로 없어서 후배들이 툴툴거렸던 생각도 나네요. 김수영씨를 좋아해서 ‘김수영시인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남자후배들하고 같이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서 재미 있었지요. 그런데 아마 생각해 보면 남자후배들은 스트레스가 많았을 거 같아요. 여대가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남자들을 위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후배들의 불만이 많았었는데 여자 선배들의 감수성이 아무래도 남자후배들이 느끼는 문제를 예민하게 파악하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납니다.
Q, 올해 초에 모교를 몇 차례 오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과 비교해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A. 제가 너무 오랜만에 학교를 가봐서 그랬는지, 아니면 캠퍼스를 바라보는 눈이 20대 초반에서 지금의 나이로 바뀌어서 인지는 몰라도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제 기억 속의 캠퍼스는 정말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는데,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의 한편으로는 건물도 많이 들어서고, 리모델링도 많이 하면서 “세종대학교가 대단히 많이 성장을 했구나, 이제 큰 학교가 되었구나”라고 하는 느낌도 동시에 받았습니다.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활력이 넘치고 역동적인 느낌이 들어서 그런 점은 대단히 긍정적으로 생각이 됩니다.
Q. 세종대학교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어떤 것이 있습니까?
A. 지금까지는 상실감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국어교사의 꿈을 안고 학교를 입학했었습니다. 한창 사춘기 시절 국어선생님께 받은 영향으로 국문과를 가서 국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을 들어 왔던 겁니다. 그런데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학교의 여러 가지 잘못된 문제들을 접하고 당시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표현방식인 유인물을 만들어 돌리다가 후배들과 함께 모교에서 강제 퇴학을 당하는 사태를 겪게 됩니다. 물론 결과적으로야 그것이 제 삶에 새로운 모멘트였고, 그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지만 그 당시의 좌절과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들이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그 이후에도 많은 후배들이 25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학교의 민주화 문제 때문에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잖아요. 그래서 저와 같은 상처들이 그 후배들에게도 다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대학이라는 과정은 가장 꽃다운 젊음을 만끽하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시기인데 그것을 학교에서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상처를 안고 사회로 나아가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이제 우리 모교가 민주화 되는 과정에 있는 지금 다 회복 되어야 할 문제들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동문 모두가, 그리고 지금 재학생들이 모두 가슴속 깊이 자부심으로 세종의 이름을 기억하는 상황으로 변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이것을 보다 앞당기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동문회의 역할이나 동문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도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Q, 마지막으로 모교의 동문과 동문회에 하고 싶은 말과 인사 부탁 드립니다.
A. 이제 우리에겐 세종에 대한 뭔가 개운하지 않았던 느낌들을 좀 회복하고 자부심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이 지나고 나면 세종동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존감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5년 동안의 상처가 있지만 반면에 이것은 그 시대를 통과한 동문들이 우리사회가 건강하게 가야 한다는 정도의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라면 지금 자기의 영역에서 최소한 그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실제 세종의 동문들은 스스로 잘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가장 성실하고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 영역에서 일을 하던 서로의 그런 모습들이 공유되어질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가정과 직장과 사회활동 속에서 자긍심을 더욱 높여 내야 합니다.
사실 그 동안 동문회에서 뭐 한다고 하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동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기에 여념이 없었던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최소한 일년에 한 두 번 정도는 우리 동문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공유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부심도 가지면서 재학생을 포함해서 우리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저 또한 그런 동문과 동문회를 만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